...가끔씩, 아주 가끔씩 그녀의 시선은 당신의 머리를 관통하여 저 먼 소실점에 다다르려 하는 것을 안다. 기차의 레일이 합쳐지는 지점 같은 것 말이다. 원근법의 논리적 종착점. 그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지점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당신은 쓸쓸해한다. 그 소실점에는 그녀가 가 닿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녀에게 욕망의 시작과 끝을 가르쳐준 사람이다. 욕망은 언제나 이론적 귀결을 가지고 있다. 불행한 것은 당신의 욕망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평행선도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그들의 근거는 이렇다. 완벽한 평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어렸을 적 당신은 연탄가스를 마신 바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일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그전 기억이 없다. 깨끗할 정도로 말이다. 당신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다. 그러니 계속 나아갈 뿐이다. 가끔은 다시 한번 연탄가스를 마셨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다. 그런데 쉽지 않다.
어쨌든 그때부터 당신은 혼자였다. 기억이 없는 자들의 운명은 그렇다. (...)
그렇게 동아리방의 문을 열어젖힐 때, 당신이 보게 되는 건, 그처럼 되고 싶다, 고 되뇌이던 스무 살의 당신이다. 단발머리 동기의 시선을 질투하던 스무 살의 당신이다. 당신은 가끔 아주 멀리 왔다고 생각해왔는데도 말이다. (...)
김영하, 단편집 <호출> 중에서 '도드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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